조금 빠른 2023 회고
오랜만에 작성하는 포스트지만 조금 빠르게 2023년을 회고하고자 합니다.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던만큼 많은 생각을 가져본 한 해였습니다.
일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올해는 일과 커리어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일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눈 앞에 들이닥친 일부터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신을 차리고 망가진 제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데에 어림 잡아 8개월은 걸린 것 같습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건강염려증)가 같이 오면서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마음이 무너지면서 몸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도 몰랐는데 이 글을 썼던 것이 4월 중순이니까 그 이후에도 제법 긴 시간 고생했네요. 지금은 정신과 약도 끊었고 다시 괜찮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끊었던 영양제도 다시 먹고 있고요.
물론 아직 100%는 아니라고 느껴져요.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무너졌고 지금은 손에 사마귀가 나서 이걸 없애느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라 손이라서 뭘 만지기가 겁이 납니다만 푹 쉬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하고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은 필라테스를 가고 하루는 농구를 하면서 다시 생체 리듬을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깨우친 것들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몇 가지 깨우친 것들이 있습니다.
- 내가 정말로 힘들 때 챙겨야하는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힘든 일은 일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다른 활동적인 것을 하면 잊혀질 줄 알았습니다. 전혀 아니었죠. 결국 ‘나’를 먼저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남을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서라도 내가 온전치 않으면 다 그르칠 수 있으니까요.
- 그와 동시에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를 포함하여 스무날 남짓의 휴가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 휴가는 모두 12월에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휴가 쓰지 않고 일만 하다가 연말에 몰아서 쉬었는데요. 내년부터는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몸이 지쳐가거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바로바로 쉬면서 재충전할 예정입니다.
-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건강염려증을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많이 느꼈는데요. 인간은 부정성 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성 편향이란 부정적인 사건이나 정서가 긍정적인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경향성을 말합니다. 우울증에 불안장애까지 있었다보니 찾아보는 모든 정보 중에서도 자극적이고 제게 부정적인 것들이 눈에 더 많이 보이고 더 각인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가 아프더라도 많이 찾아보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무언가 정보를 찾을 때도 적당히 필요한 수준만 찾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가끔은 주위를 모두 차단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일을 안하진 않았으니까
올 한 해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더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일들만을 짧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상반기와 하반기 초에 걸쳐 ML 엔지니어링과 MLOps 기초에 대해서 사내 강의를 몇 차례 진행했습니다. 깊지 않은 수준의 강의였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힘들게 자료를 구성하고 개발했던 것 같습니다. 되려 강의를 하는 것 자체가 더 수월했으니까요. 자세한 내용은 위 포스트 링크를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반기에 승진을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과장급으로 승진을 했는데요. 이 포스트에 관련 내용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포스트에 적힌 고민들은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주제들로 제 향후 커리어를 더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반기에는 요즘 핫한 LLM 기반의 여러 서비스 PoC를 진행했습니다. LangChain을 써서 진행했는데 사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간을 할애하여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만 짧게 이야기 하자면 LangChain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좋지 않은 기억의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일의 특성상 많은 오픈소스를 살펴보고 사용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어떤 분야에서 압도적인 사용률을 자랑하는데도 이렇게 문서화 수준이 낮고 사용성이 낮은 오픈소스는 처음이었습니다. 잦은 업데이트로 인해 문서의 업데이트가 늦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모든 내용을 커버해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고, 불필요하게 복잡하단 느낌도 문제입니다. 이런 내용을 잘 정리한 글이 있는데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사용성이 낮은 오픈소스를 이용해서 PoC를 진행하다보니 재미를 못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5년 근속마다 주어지는 한 달의 안식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블로그를 쉬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인데요. 남은 한 해는 최대한 일과 멀어져서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긴 휴가더라도 공부를 하거나 회사에 관련된 일을 적당히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번 휴가는 이름에 걸맞게 안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한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잘 쉬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노력해보고 있습니다.
미뤄둔 게임도 많이 해보고 있고 특히 책을 많이 읽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저번 주에는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처럼 잡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글도 술술 읽히는 재밌는 책이어서 금방 읽었습니다. 남은 기간에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으려고 하는데 대부분이 에세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볍게 읽고 넘기기에 좋은 책들로 말이죠.
나가며
아무리 2023년을 돌아봐도 일이나 커리어 측면에서는 큰 성장을 이룬 것 같진 않습니다. 그 부분에선 크게 아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제게 너무나 큰 일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든 해를 넘기지 않고 추스린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상담 선생님께서는 길게 보고 갈 일이라고 하신만큼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음 포스트는 빨라도 2023년의 마지막 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때까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다가 몸을 데우는 느낌으로 포스팅을 시작할 것 같네요.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남은 한 해를 평온히 마무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