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최근에 팀 회식을 하는데 재밌게도 여러 후배분들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회사에 들어와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이것저것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배우고 성장할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조직이 스스로에게 어떤 책임을 부과하기 시작하고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내가 지금 위치한 좌표가 희미해질 때 위와 같은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도 3년차부터 였던 것 같네요. 제가 누군가에게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줄 수 있을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 분들에게 앞으로의 길보다는 제가 걸어왔던 길을 말씀드렸는데요. 어쩌다보니 서로 다른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께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사람마다 그 방식은 다르다. 결국 조금 더 높은 역할을 해보지 않고선 나에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내게 맞는 방식이 잘못된 방법인걸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런 역할을 맡아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조직에서 제법 빠르게 PL, PM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물론 저는 PM 역할보단 지금처럼 PL로써 그리고 ML Engineer로써 이것저것 개발하고 공부하는게 더 좋지만요. 하지만 조직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같을 수는 없죠. 조직은 승진을 한 제게 PM 역할을 원할테니까요.
하지만 나의 방향이 조직의 방향과 다르더라도 문제 없는 시기가 있습니다. 당연히 저연차의 주니어 시기죠. 제가 첫 PL 역할을 맡았을 때가 아마 3년차였죠. 그때부터 운이 좋게도 계속 PL 역할이나 PM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항상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진행했고 조직은 원하지 않는 방향이었을겁니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일하는 과정과 방식의 퀄리티를 중시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땐 겁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비슷한 연차의 그 누구보다 앞서서 파트를 리딩하거나 프로젝트를 관리했으니까요. 누구보다 앞서서 나의 방식이 어떤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제 밑거름이 되었고 회사에서 자리 잡게 만든 원동력이니까요.
하지만 승진 후에는 제법 주위가 달라졌습니다. 어느새 회사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같아져야 하는 때가 온거죠. 하지만 그 방향이 같아지더라도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일을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만큼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국 ‘나’라는 사람의 테마, 장르를 정하는 것은 그 어느 시기보다 주니어 때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제 후배분들이 어떤 시도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시기에 많은 시도를 해보도록 조언을 드려봤습니다.
조직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있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분께는 하는 일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적용해보며 해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 항상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해서 강의를 듣는 대학교 생활이 그 전보다 훨씬 즐거웠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도 일이지만 그 일을 제가 배워보고 싶은 것들을 적용해가며 했습니다. 2018년엔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LightGBM도 써보고 그 이후엔 병렬처리를 위해 따끈따끈한 Ray도 써보았던 것처럼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들, 적용해보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순수한 데이터 분석보다는 새로운 것과 엔지니어링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네요.
데이터 과학자에게 많은 갈림길을 제시하는 요즘 시기에는 이런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통계를 더 써보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 엔지니어링 영역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조직에서 누군가는 데이터 분석가로, 누군가는 ML Engineer로 자리잡겠죠.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내 밑이 움푹 파여 그게 나의 위치가 됩니다.
하지만 그 위치를 잡는 시기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주니어 때일겁니다. 절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 채로 깊이 박히게 되는 것보다는, 낮은 연차에서부터 주도적으로 나의 X 좌표와 Y 좌표를 정해야 하는거죠.
최근에 저희 조직의 상무님께 생일 축하 인사를 드렸는데 제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는 것 같다며 기대가 크다는 매우 감사한 답장을 받았습니다. 이 장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제법 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식 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보니 생각이 더 많았고 이 포스트에서 하고 싶은 말도 더 길어졌네요.
이러나저러나 쓸데없이 길어진 것 같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똑같았던 것 같습니다. 아래처럼 말이죠.
조직에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시기는 주니어 시기이며, 이 때 주도적으로 나의 위치와 테마를 정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