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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돌아보기

돌이켜보니 거의 1년이 됐네요.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벅찼다는 이유로 잠깐 내려놓았는데, 그 사이에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더 빨라진 것 같습니다. 작년 회고 이후 남은 2025년의 몇 달은 회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땐 고생하고 있단 무난한 말로 문장을 맺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쓰레기 같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다행히 올해 2월부로 타의였지만 운 좋게 다른 조직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기술 총괄 직함을 달고 조직을 옮기다 보니 조금 빨리 적응해야 해서 애를 먹었지만 나름 충실한 6개월이었습니다. 윗선의 회의에도 많이 불려다니고, 젊은 조직인 만큼 기술 리더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 방향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술에도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지만 예전보다 리더십과 조직 문화 쪽에 더 마음이 갑니다.

다시 글을 쓰려는 이유

리더십과 조직 문화는 직접 부딪혀가며 배우기 어렵기에 여러 블로그나 아티클을 보면서 제 나름의 철학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재밌게 보는 블로그가 Sean Goedecke의 블로그입니다. 호주 출신의 GitHub 스태프 엔지니어인데, 기술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상위 리더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요즘 기술과 조직의 변화, 그리고 본인이 갖고 있는 생각을 맛깔나게 다루는 사람입니다. 새 글이 올라오면 거의 빠짐없이 읽는 편인데 두 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1. How to keep thinking
  2. Blog about things you don’t understand yet

저도 여느 엔지니어와 다를 것 없이 Claude Code를 쓰며 많은 걸 위임하다 보니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취향대로 만들었다지만 단지 취향만 잔뜩 있을 뿐, 그 자세한 구조와 그 구조가 잡힌 이유를 제 걸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언제든 읽을 수 있게 문서화까지 해놨지만 마치 기술 부채처럼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한구석에 자리 잡아 쌓여가기만 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쌓인 것들을 둘러보더라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 언어로 쓰인 글이 아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Claude가 쓴 ‘이건 AI로 쓴 겁니다’라고 광고하는 문서였습니다. 읽을 때마다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첫 번째 인용한 블로그 글을 읽으며 이 문장에 꽂혔습니다.

Specifically, I mean writing in my own words. Writing with an LLM does not work for this at all, even if you’re going to some effort to iterate on the content and outline the things you want to say.

제가 겪었던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을 제대로 관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언어로 쓰인 게 아니라 결국 머릿속에서 열심히 굴려가며 읽어봤자 제가 이해한 게 아니다 보니 분명 읽었는데도 남는 게 없는 찝찝함이 계속 거슬렸던 거죠. 결국 다시 글을 쓰는 게, 아니면 최소 내 언어로 정리라도 하는 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인용한 블로그의 아래 문장도 이 생각을 뒷받침해줬습니다.

Writing is the best way to think clearly about a topic. It’s easy to believe you understand something when you’re just turning it over in your head.

사실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와 지금 다시 시작하는 이유가 똑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제 생각과 배웠던 것을 정리하려고 보면 어느새 LLM이 쏟아내는 수많은 문서와 코드가 턱밑까지 차올라 허덕이게 되는 게 다르죠.

습관처럼 만들기

그래서 이제 조금 느리게 다가가려고요. 물에 빠졌다고 손발을 바삐 움직여봤자 힘만 빠지니까요. 천천히 몸에서 힘을 빼고 물 위에 떠올라서 차분하게 살 궁리를 하는 게 맞겠죠. 자리를 비웠던 지난 시간 동안 앞만 보며 달려오느라 놓쳐왔던 것부터 다시 차곡차곡 쌓으려고 합니다.

너무 대단한 걸 쓸 생각은 없습니다. ‘LLM이 없었다면 어떤 걸 주로 썼을까?’란 생각과 함께, 많이 바뀌어버린 주변 상황을 차분히 관조하며 느끼는 것들을 손 가는 대로 써보려고 합니다. Claude Code를 사용하며 생긴 노하우라든지 AI 프레임워크 같은 기술적인 내용부터 일과 조직, 리더십을 둘러싼 묵직한 생각까지 말이죠. 되도록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습관으로 굳히고 싶습니다. LLM 덕분에 뿌옇게 굳어버린 뇌를 말랑하게 만들기엔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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